2창수맨 2013. 5. 16. 09:18

 

모방론 Mimesis Theory 模仿

 

김승환/충북대 교수

 

어린 K는 신문을 거꾸로 들고 무엇을 읽고 있었다. 아직 글을 모르는 아이의 이상한 행동을 본 K의 모친은 ‘K야, 무얼 하고 있지?’ 이렇게 묻자, K는 맑게 웃으면서 ‘신문’이라고 말했다. 왜 어린 K가 거꾸로 신문을 보고 있었을까? 네 살 K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행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직감하고 아버지의 행위를 모방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에게는 모방본능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본능은 두 가지 원인에서 생겨난다. 첫째,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모방 성향이 강하고 둘째, 모든 사람은 모방을 하면서 즐거움을 느낀다. 일찍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자연과 현실을 모방한다고 보았는데 모방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플라톤(Plato, BC 427 ~ BC 347)은 침대를 예로 들면서 예술가는 침대의 이데아를 모방한 목수의 침대를 다시 모방하는 저급한 존재로 설정했다.

 

플라톤에 의하면 예술은 모방의 모방 또는 그림자의 그림자이며 진리로부터 두 단계 떨어진 저급한 영역이다. 이것은 이데아의 침대(진리/본질), 그것을 재현한 실재 침대(허상/그림자), 다시 그것을 모방한 침대(예술작품)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플라톤은 저급한 존재인 예술가의 저급한 행위인 예술창작은 가치가 없으므로 이상국가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논지를 폈다. 더구나 예술가는 신적 광기가 있어야 모방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감각적으로 이성을 교란시키는 존재일 뿐이다. 이런 그의 인식은 모방 또는 보여주기(showing)라고 할 수 있는 미메시스(Mimesis)와 재현 또는 말하기(telling)라고 할 수 있는 디에게시스(Diegesis)를 포괄한다. 플라톤의 시인추방론은 [국가(The Republic)] 10권 후기(Epilogue, 595a ~ 608b)에 나오는데 ‘모방예술에 대한 거부(Rejection of Mimetic Art)’를 예술론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 플라톤과 달리 인간의 모방본능과 모방의 가치를 강조했다. 플라톤은 모방을 기술적 재현으로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미적 쾌락, 창의성, 효용성, 교육의 관점에서 보고, 인간 내면의 모방이야말로 특별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관점은 ‘모방은 즐겁고 가치 있는 창조적 행위다’로 요약할 수 있다. 당시 그리스는 찬란한 예술이 꽃피던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행위를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플라톤이 자연을 모방한 그리스 예술을 부정한다는 것은 그리스 사회와 제도에 대한 일종의 부정인 셈이었다. 이런 전후 맥락을 잘 알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가치를 복권시키면서 모방을 본능인 즐거움과 창조적 행위로 보는 한편 모방을 통한 교육과 학습에 의미를 부여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의 결과를 고상한 것, 저열한 것, 고상하거나 저열한 것 그대로 등 세 가지 층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승 플라톤이 모방을 기술적 재현으로 본 것과 반대로 모방을 허구(fiction), 재현(representation), 표현(expression)을 넘어서는 창조적 능력으로 간주했다. 그 창조적 모방능력은 철학이 추구하는 진선미와 고상한 인간본성을 창의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본성의 고상함과 비극으로 표현되는 숭고(sublime)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는 비극이 ‘심각한 인간 행위의 모방이며 연민과 두려움을 주면서 관객의 감정을 정화시켜 준다’고 믿었다. 이처럼 예술은 카타르시스를 통하여 마음을 정화하기도 하면서 모방을 통하여 보편적 진리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예술적 모방은 개연성(蓋然性) 즉 가능성까지 모방하는 창의적인 행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단 일회적 사건인 역사보다 잠재적 사건이자 가능성 또는 개연성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은 진리/본질을 추구하는 철학과 같은 기능이 있다고 단언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현실제도의 문제점을 인식한 플라톤이 진, 선, 미를 재현하는 것은 오로지 철학에서만 가능하다고 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적 모방으로도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 두 철학자의 모방론은 근대 리얼리즘으로 계승되었는데, 특히 아우어바흐(Erich Auerbach, 1897 ~ 1957)에 의해서 새롭게 해석된 바 있다. 아우어바흐는 호머의 오디세이(Odyssey)의 재현방식과 기독교 성경의 재현방식을 비교하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현실반영의 논리를 전개했다.

인문천문 목요학습 K-269 Thursday Study 星期四学习 2013년 5월 16일(목)

*참고나 인용을 했을 경우에는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표절은 범죄입니다.

*참고문헌 Rrich Auerbach, The Representation of Reality in Western Literature. Fiftieth Anniversary Ed. trans., Willard Trask.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3).

*참조 <비극>,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순수이성>, <시인추방론>, <카타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