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경영 / 새로운 니즈와 미술관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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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의 운영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수집, 보존, 전시 등과 같은 전통적인 역할과 기능에서 문화서비스를 제공하는, 미술관 이용객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미술관은 도서관처럼 조용해야 하는, 그저 엄숙하고 정적인 공간이 아니라, 언제 방문하든, 다양한 볼거리와 재미있는 즐길거리가 있는 변화무쌍한 공간으로의 변화를 요청 받고 있다. 향유자, 수용자 중심의 미술관 운영 패러다임의 변화는 국내보다는 주로 서구의 경우에서 그 예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해외 유수의 미술관들은 오래전부터 수집, 보존, 전시공간으로서의 미술관의 고전적 기능을 벗어나 다양한 문화 서비스를 창출, 제공하는 살아 숨 쉬는 복합문화공간으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등 운영 패러다임과 중심 기능의 전환을 이루었다. 이에 반해 한국의 미술관은 여전히 전시 중심의 운영 패러다임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미술관에 있어 전시와 전시공간은 기본이다. 전시가 없는 미술관은 의미가 없다. 제아무리 비싼 고급 자동차도 엔진이 부실하면, 엔진 동력 없이는 차는 결코 굴러갈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미술관은 전시만이어서는 안 된다. 앞서 지적했듯 현재, 미래의 미술관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작용해야 한다. 앞서 지적한 이런 저런 기능들이 유기적으로 맞아 돌아가야 미술관도 자동차도 승객을 태우고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이쯤이면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도 그저 관람객 정도로 부를 것이 아니라, 이용객, 방문객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것이 상설이건 기획이건, 미술관은 전시는 기본으로 가져가지만, 관람객과 이용객을 위한 교육프로그램 개설, 그 프로그램이 제공되는 적합한 공간, 그들에게 제공되고 열려 있을 도서와 자료실, 카페, 식당, 아트숍 등의 위치와 동선, 그에 따른 서비스와 접근 편의 시설 마련 등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시와 함께 아트 상품, 아카이브, 차별화된 교육 프로그램, 아름답고 전망이 좋은, 특별한 맛난 음식이 준비되어 있는 휴게 공간으로서의 미술관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왕성한, 새로운 니즈로 무장한 관객, 이용자, 즉 수용자를 중심으로 한 미술관 운영 프로그램 마련에 골몰할 때다. 그저 지난 시기까지 이어져온 관성에 의해, 이른바 공급자 중심의, 소장품 몇 점, 연간 기획전, 상설전, 국내전, 국제전, 연례전 몇 회, 블록버스터에 의한 몇 만 명 관객 동원, 언론 노출 몇 회 정도로 만족하고 안주할 때가 아니다. 블록버스터 전시에 관람객들이 보여준 뜨거운(?) 반응을, 상시는 아니더라도, 연간 꾸준하게 유지할 수 있는, 흡입할 수 있는, 그들의 니즈를 정확하게 읽고 반영하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집객 모티프를, 수용자 중심의 프로그램 마련을 위한 반성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렇듯 관람객 개발에 대한 고민의 해결책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찾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블록버스터 전시다. 마약처럼 블록버스터를 찾게 되고 전시를 보기 위해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의 줄을 보면서 만족해하고 사진을 찍어 미술관 소식지 표지에 올리기도 한다. "○○전, 관람객 ○○만 명 돌파…" 등과 같은 자극적인 카피가 이어진다. 결국 그 다음해에는 더 많은 관람객 동원을 위해, 약발이 더 강한 전시, 규모가 더 큰 전시를 찾아 나서게 되고, 누군가가 들고 온 그럴 듯한 타이틀의 전시 제안을 덥석 물게 되는 것이다. 제안을 하는 측이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서로의 이해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 상업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상업기획주체와 공공성을 추구하는 공공재와의 불안한 동거라 할까. 문제는 지향하는 바가 다른 두 주체가 한 배를 타고 간다는 부분에 있다. 그럼에도 서로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가는 것은 제안하는 쪽은 돈이 되기 때문이고 받아들이는 쪽은 연간 관람객 수를 일정 수준으로 보장해주는 엄청난 관객 동원과 언론의 집중 보도, 노출이 일정수준 보장되기 때문이다. 블록버스터에 대한 수용자의 입장도 있다. 지자체가 설립한 시ㆍ도립 미술관의 경우, 지역민들이 미술관 홈페이지에 민원을 올리는 경우가 간혹 있다. 서울에서는 이런저런 블록버스터 전시를 개최하는데, 왜 우리 시립미술관에서는 하지 않느냐. 우리도 보고 싶다하는 식이다. 사실이다. 작전 세력 내지는 기획사 알바에 의한 민원이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지만, 건강한 수요도 분명하게 있다. 이렇듯 관람객의 니즈가 바뀌었다. 미술관의 상업화를 미술관 스스로 조장하고 있느냐는 비판을 넘어 중요한 것은 관객의 니즈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술관이 새로운 미술관문화 창출, 혹은 운영 패러다임의 변화와 실수요자 층의 니즈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관객들의 전시, 교육 등과 관련한 변화된 새로운 욕구를 파고드는, 달래는, 충족시키는 전문 기획사들과 독립 기획자들이 잇달아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요자로서 미술관 이용객들의 앞서가는 니즈와 미술관의 소극적 대처는 전문성은 물론,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탄탄한 인적 구성과 자금 동원 능력이라든가 든든한 인맥, 학맥 등으로 무장한 다국적인 전문 기획사 등이 생겨나는 동인으로 작용했다. 이들은 시의성 있는 전시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눈높이 전략을 효과적으로 구사해 나가는 시스템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적인 비즈니스 전략과 네트워크, 마인드를 다지면서 동시대 이슈를 힘 있게 효과적으로 담아내는 문제적 전시를 국내외에서 잇달라 성사시키면서 국제적인 인지도를 획득하고 있다. 개인적인 활동은 물론, 큐레이팅 컴퍼니를 설립, 시스템을 갖추고 사업적인 측면에서도 결과를 내어 놓고 있다. 기존 미술관, 화랑 시스템 등이 독점해오던 인큐베이팅, 프로모션, 큐레이팅, 디벨럽핑, 사후관리 등 토탈 미술문화서비스를 선도해 나갈 태세다. 국내외에서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과 시스템, 즉 크고 작은 인프라가 속속 등장하면서, 나아가 이들이 연계, 연대하기 시작하면서 전혀 새로운 미술가치를 겨냥하는 문화적 시너지가 창출될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문화력을 지탱하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다. 미술계의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의 등장이 멀지 않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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