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 눈으로 보아야 국제화다?
서양의 눈으로 보아야 국제화다?
Artist 2창수
- 지역문화시점 설정에 대하여 어느 날 신선한 광고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하얀 도포를 입은 할아버지께서 흑립을 쓰고 “제비몰러 나가~안다.”는 창을 하시며 “우리껏이 세계적인 것이여~!”라 말하던 그 장면이 기억난다. 이 말은 당시 세계화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인식되어 너도나도 한국적 특색의 것은 무조건 세계적이라는 것으로 이야기되곤 하였다. 한복도, 한식도, 한옥도 세계화를 담을 수 있다는 인식이 아니라 그냥 우리 것이면 세계적이 된다는 생각이었다.
전통에 기인한 우리 것은 다른 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독특한 것도 있지만 과연 독특함만으로 세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일까? 이러한 한국적 독특함은 현재 일상에도잘 사용하지 않는다. 서양은 동양을 오리엔트라고 칭하는데 유럽에서 본다면 동쪽에 있는 지역이라는 뜻으로 해석 된다. <오리엔트란 라틴어로 '해돋이', '해가 뜨는 방향'인 오리엔스(oriens)에 해당되는 단어로서 이 단어가 발전하여 동방, 동양(orient)이 되었다. - 위키백과> 이것은 유럽을 기준으로 동양을 정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이야기하는 동양은 원래 북아프리카와 인도 정도의 지역을 지칭하던 말이었다. 그 정도의 지역이 서양의 관리 가능한 공간이었고 그들에게는 새로운 세계였다. 그러나 산업이 팽창하며 식민지를 늘리던 수세기 동안 식민지들이 늘어나고 과학과 항해술 발달로 서양국가 간 식민지 선점경쟁이 심해졌다. 동양으로의 진출에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동양국가를 계몽대상으로 간주하며 식민정책을 했다. 그들의 식민정책정당화는 비참하며 비인간적인 원시적 동양사회를 서양식 근대화로 만들어 다수의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일방적 서구 중심의 관점은 전투에 패한 동양국가들에게는 수용되고, 수탈당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만들었다.
1700년대 후반부터 조선에서도 이러한 탐사를 목적으로 온 이양선의침몰이 잦았다. 서양은 허풍으로 소문난, 금으로 된 지역에 대한 환상으로 세계를 이리저리 기웃거렸으며, 탐험가는 그럴싸한 거짓말로 투자자들에게 받은 범선을 이용하여 전 세계를 실제로 돌며 탐사했다. 탐사가 중에는 종교인이 함께 가는 경우가 많은데 선원의 심리안정과 계몽을 빌미로 한 식민지거점 확보의 임무를 수행 하였다. 선교사는 서양식 계몽의 중요한 방법인 종교전파를 수행하였다. 종교중심이 유럽에 있으므로 자연스럽게 유럽에 복속 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문화식민정책이었다.1866년에 선교사를 죽였다는 핑계로 서구는 조선을 무력으로 개방하려 하였다. 종교를 이용한 이분법적방식은 기독교세계관에 속해있는 것은 문명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미개라는 서양의 단순한 논리구조를 보여 주는 것이다. 종교는 식민지정책의 든든한 정책으로 이미 종교적 논리에 빠져있는 식민지민들의 자발적인 충성을 받는다. 이런 것을 막기 위한 조선의 쇄국정책은 결국 근대화가 되기 위한 수많은 부정적결과를 낳았다. 쇄국정책의 실패로 우리 눈으로 세상 보는 법까지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다른 시선으로 우리를 보는 방법을 아직까지도 하는 것이다.
세계화는 또 다른 식민지 만들기?
세계화가 아직 식지 않은 주제이긴 하지만 너무나 쉽게 유행처럼 더 새로운 관점이 등장한다. 국제통용이 가능한 논점으로 시작하여 동등한 문화로 인정하며 상호의존을 통한 국제질서재편이 세계화이다. 이러한 논점은 서양에 대한 설명을 전제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동양은 항상 자신을 서양에 대해 설명을 해야 했다. 그것이 세계화라는 첫발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로인해 세계에서 통하는 우리 것에 대한 자체 검열을 통해 세계화 가가능한 전통을 찾는다. 서양이 세계이고 세계화를 위해서는 서양이 관심 있을 만한 것을 동양이 들고 와서 이해를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동양의 사상, 철학, 종교, 문화, 예술 등의 설명을 서양에 맞게 만들어야 인정을 받는 것은 왜곡된 동양을 강요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문화적이며 자발적인 식민성이 생기는 것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모든 지역민들에 까지 내려가게 되어 지역의 생각은 후진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며 세계화나 세련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서울중앙문화에 대한 무조건 적인 동경을 일으켰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도 세계중심문화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되며 결국 우리 것은 좋지 않다는 결론을 갖게 된다. 최근 방송되던 첨가조미료의 광고를 보면 한국 사람들이 건강에 문제없는 조미료를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고 미국에서 한국식당하는 사장이 이야기기 하는 것은 우리의 문화지향성을 잘 보여준다. 그이면의 내용에는 미국에서도 조미료를 쓴다는 것이니 너희도 조미료 먹어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를 통해 문화의 기본 구성인식마저도 서구에 정복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광고는 단순히 본인의 물건을 팔기 위한 것인데 광고내부는 대중심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있다. ‘미국도 먹는데 너희는 왜 안 먹니?’의 광고는 불쾌하기 짝이 없는 광고지만 이러한 광고와 신문기자들의 제품안전성과 관련된 기사를 패키지로 쓰면 대중은 동화되어 ‘착착’ 열심히 뿌려 먹을 것이다. 세계화는 물건팔기위한 국경 허물기였고 다국적 기업이라는 명분으로 또 다른 경제 식민지정책을 충실히 펴고 있다. 이름 만 바뀌었지 제국주의의 방식과 다름없다. 대중을 기만하고 중심자본이 서구에 있으므로 문화를 통한 경제문화식민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지역관점 설정.
미의 기준이 서양의 것으로 바뀌어 쌍꺼풀 없는 여성을 보기 힘들어졌다. 당연한 듯 부모는 아이의 대학진학선물로 미처 못 만들었던 눈꺼풀을 만들어 주는 시대다. 나의 것 임에도 남의 시선에 맞추는 것은 시대를 불가하고 계속 있어왔던 일이다. 서로 간 관계가 중요시 되는 현대사회는 더더욱 외모가 중요한판단의 기본을 제공했다. 정보발달은 다른 곳의 유행과 문화를 빨리 전파하였고 이를 통해 더 넓은 사회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지역공동체는 타 지역과 다른 유사점을 제시해 유대감을 높여왔다. 그렇기에 지역의 시점은 지역 내공통점을 찾는 것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너무 멀리 있는, 현실과의 괴리가 아니라 현실을 수반한공통적 분모를 찾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역시점은 지역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시점으로 우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포함이 될 것이며, 이를 통해 보이는 모습을 만드는 기준도 될 것이다.
어느 문화중심으로 지역문화를 해석해야 하는가?
지역시점을 만드는 것은 어느 시대, 사건을 통한 지역 문화정립이필요하다. 이것은 구체화시키기 위한 현실적 합의 되는 지역 사건이필요하다. 각기 다양한 장르를 구
분하여 나누어 정리해야 하며 나온 결과를 종합하여 하나의 기준점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역관점은 분명 다른 곳에서 제공되던 시점과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는 시점이 될 것이고 이런 시점을 통해 지역특색이 생길 것이다. 못생긴 부모에게 못난이가 태어나지만 못생긴 부모라도 지 자식은 이쁘다. 굳이 미운 외모를 남들 보기 좋으라고 만드는 것은 뭔가 빼앗기는 것 같다. 얼굴을 바꾸어 그렇게 살더라도 지역문화는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오랜 역사와 다양한 이야기가 있다. 그러한 장점을 모아 지역의 시점을 정리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에너지를 모은다면 세계를 올바르게 우리의 시선으로 보고 평가 가능한 일이 생길 것이다. 국제화는 내가 바라보는 것부터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