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본 이야기/2창수의 세상 미술 이야기

예술정책을 위해 예술가가해야 할 일

2창수맨 2012. 6. 5. 12:25

예술정책을 위해 예술가가 해야 할 일

 

 

 

 

글, 사진 2창수

 

우리주위에는 수많은 예술들이 있다.

누구는 미용도 예술이고 삶도 예술이고 하다못해 몸매도 예술이라 칭한다.

그럼 예술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사전적 의미의 예술이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활동하는 일이라 한다. 역시 사전적 말은 딱딱하고 와 닿지 않는다.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문장을 그렇게 길게 만들었다. 그런 말보다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예술을 난 이런 관점에서 정리를 하려 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어떻게 사용되며 어떤 가치를 지니게 되는가?

예술이란, 단순하게 정리 하자면 생존을 위해 생산하는 일을 벗어난 유희적 활동이 예술적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쓸 만하지 않은 사용 가치를 지녔으며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시각에 의한 시대 반영적 유희 결과물이 예술품이라 본다. 이러한 가치적 척도로 보면 몸매는 일단 예술이 아니고 미용, 삶도 역시 예술이 아닐 확률이 높다. 별다른 준비 없이 언어로 정리 되어버리는 오늘날, 넘치는 언어 속에 함축적 내용을 급하게 담기위해 예술이란 단어로 그냥 정리 하는 것 같다. 남에게 이로운 어떠한 행위 등을 쉽게 예술로 규정하는데 사실 예술은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읽히기 보다는 후대에 어떠한 영향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지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인류의 자취 중 그 시대의 표상으로 기록되어지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예술로 시대적 가치를 증명한다. 예술품의 가치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시대적 이데올로기에 대하여 변형을 주장 한다.

 

난 지역에 모든 예술의 중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급하게 생각하여 서울의 유행에 따라야 한다고 생각 하겠지만 그런 방법은 허구에 발을 딛고 위로 뛰는 행위이다. 부실한 디딤으로 높이 뛰지도 못 할뿐만 아니라 자빠지기 십상이다. 시대는 중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 있다. 예술은 시대의 흐름을 알아내고 다음 시대에 대한 제시를 예술가들이 담당해야 한다. 그 예술가들의 직관을 스스로 비판을 해 나아가며 만들어진 것들이 예술이다. 올바른 비판을 위해서는 비판이 가능한 사회적 관용이 유지되어야 한다. 실패했다고 주장하는 자본주의적 속성에 세상모든 것을 맞추어 놓고 부자와 거지로 급하게 치닫는 사회는 예술가뿐만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주의를 가지고 지켜봐야 하는 사회다.

 

예술가들이 무엇을 하기위해서는 지원이 필요하다. 정책이 바뀌면 우선 줄이는 것이 문화비이다. 그러한 정책은 오랫동안 예술가들을 쫓아내는 정책으로 인식되었다. 문화도시를 표방하고 있는 청주 역시 껍데기를 만드는 일보다 좋은 예술가들이 청주 지역으로 올 수 있는 환경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 하다. 지역 예술과 시대 흐름을 정리하고 그것들을 통한 지역 예술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 지원책은 결국 예술가를 지역에 남게 할 것이고 미래에 훌륭히 지역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10년쯤 한명씩 좋은 예술가가 우리를 기쁘게 할 것이고 그것으로 품격 있는 도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지원 방식을 만든 다고 하더라도 예술가와 비 예술가의 구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좋은 행정이 나오더라도 제대로 필요한 곳에 사용 되어야 빛을 발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요로 하는 작가들의 구분이 먼저 필요하다.

 

미래의 가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작가군 - 미래적 시각으로 예술사를 움직일 작가

사회 현실을 반영 하는 작가군 - 현실을 대하면서 지역을 담당할 작가

개인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작가군 - 자신의 미감을 알리기 위한 작가

 

이렇게 크게 3단계로 적용 하면 될 듯하다. 이렇게 구분 지어진 작가 군을 바탕으로 각기 예술적 역량을 상중하로 나뉘게 되면 9등급의 작가 군이 생긴다. 만들어진 등급을 기준으로 작품 준비에 도움을 주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등급에 속한 작가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작가들 역시 등록을 해야 한다. 작가가 무슨 심사를 통해 등급을 받는가! 라며 불쾌 하겠지만 그동안 만들어 놓은 판이 어떠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당당하게 제도를 이용하고 좋은 작품으로 지역에 도움이 되려면 기존의 두루뭉술한 방법을 바꿔야 할 것이다.

 

예술가들은 좋은 위치에 있거나 나쁜 위치에 있다고 해서 그 가치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예술가들의 레벨을 학벌에 의존 해왔는데 고등학교 때 성적을 죽을 때까지의 능력으로 봐야 하는가? 각기 모든 단계는 중요한 위치이다. 말을 풀어 놨지만 개인 삶의 풍요를 위한 작가군은 소위 취미 작가 군이다. 개인의 만족을 위해 작품 하는 것을 왜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가? 그러나 개인 삶의 행복보다 더 소중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각기 모든 것이 소중하지만 정책의 지원은 올바르게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적 작가는 현재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한다. 그런 작가에게 일괄 지급되는 금액은 터무니없는 작은 액수이다. (어떤 작가는 인공위성 프로젝트도 준비 중이다.) 그러나 취미 작가군은 대책 없이 큰 금액이다. 이런 금액을 사용하기위해 그동안 작가들은 무조건 비싼 서울 소재 갤러리에서 전시하느라 분주했다. 들어보니 지역 지원금을 가지고 서울 갤러리들만 배부르게 해주었다. 현재의 정책을 계속 한다면 곧 눈먼 돈 잘 쓰고 있다는 소문이 중앙으로 갈 것이고 이미 받았던 최저점을 또 받고 줄은 지원금이 더 줄어 들것으로 기대된다. 이제는 방법을 바꿔야 된다. 우리의 이야기지만 모든 한국 사람이 필요한 이야기,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이야기를 말하는 예술을 청주에서 만들어 내기를 바란다. 생뚱맞게 뉴욕에서 개인적 소소한 일상을 작업하다 갑자기 인류를 이야기하는 세계적 예술가를 데리고 청주를 만들려 하지 말아야 한다.

 

 

 

예술가들은 그들 권리를 주장하기가 쉽지 않은 한계에 있다. 직업으로 예술가를 인정 안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세금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사회의 암과 같은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직 덜 망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재화의 가치로 모든 것을 재단한다. 이렇게 예술가 등록을 통해 놓는다면 벌이로 자유롭지 않아도 사회적 직업으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다른 일을 처리 할 기본적 토대가 마련될 것이다. 전국은 힘들더라도 청주부터 시작해서 우리나라 최초의 제대로 된 문화적 도시를 만들어 보길 기대한다.

 

시민의 뜻이 중요시 되는 현재다. 정책의 유행이 요즘은 시민인 것 같다. 작품도 참여 형이 과거의 관람 형보다 인기다. 그런 인기가 몇 년을 유행할까? 청주에서 만든 유행이었다면 지속적인 것도 고려할 가치가 있겠지만 몇 년 못 간다. 좀 더 미래적으로 고민하고 시행 해보는 것이 당장 틀리고 부족하더라도 문화도시가 되는 지름길이다. 예술지원은 10명중 한명만 잘 되도 좋은 정책이다.

 

행정가가 걱정 말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관용적인 사회, 예술계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