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정책에 대하여 - 시방아트 9월호
왕년엔 죽~~였는데!
인간문화재 정책에 대하여.
Artist 2창수
동물원에 가면 동물들이 축 늘어져 있거나 하품이나 하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같이 구경한다. 그들 모습에서 활기를 찾기는 상당히 어려운데 시간 맞춰 던져주는 먹이 주는 시간에나 서로 더 먹으려고 잠시 활기를 보여준다. 상당한 규모의 사파리 공원을 가더라도 마찬가지인데 넓게 펼쳐진 공원 같은 공간이지만 산소 부족인지 연일 하품이나 하며 지나가는 사람 구경이나 한다. 긴장은 찾아보기 힘들고 축 늘어져 유연한 관절 모습을 보여준다.
TV를 보면 언젠가부터 라이브, 야생 프로그램들이 유행을 하고 있다. 관객들조차 다양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으니 억지로 구성하여 만들어 내서는 그 다양한 관심을 맞출 수 없기에 그러한 방식의 방송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재가 다양해져 거창한 것도 있지만 대다수는 주변의 그저 그런 이야기로 구성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시답지 않은 야생적 이야기가 살아있는 어떤 감정을 TV로 전달시키는 것이고 그것에 시청자들은 만족한다.
나의 뜻이나 관점을 상대방에게 전달 할 때 다양한 관점을 어떻게 잘 전달할까에 대한 방법적 시도는 꾸준히 상황에 맞추어 변화되었다. 미니멀 미술은 아무것도 그리지 않은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다양한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여 지는 방식으로 그렇게 단순화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필요 없는 것을 다 없애고 남은 것을 미니멀이라 하는데 서양에서는 이것저것을 다 더한 것을 미니멀이라 한다. 굳이 같다면 같을 수 있지만 사실 많이 다르지 않은가? 이런 것과 비슷한 관점이 있다.
모든 직업은 자신의 생활을 유지하기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이 많이 필요로 하는 직업일수록 더 많은 발전이 이루어 졌고 중요한 기술을 요하는 직업일수록 사회로부터 존경과 부의 상징이 되었다. 인간관계의 문제가 생겼을 때 동내 어른에게 가서 의견을 구하고 그 의견을 경청하여 따르던 시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의견 제시에도 자격이 요구되는 사회가 되면서 법을 따르게 되었고 관습을 무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런 시대는 도시로 사람들을 모으던 공업화시대였고, 발달된 공업화로 인하여 필요한 물건은 사람이 아닌 기계들이 만들기 시작했다. 기계가 하는 일은 대량 생산이다. 동일한 방식으로 동일한 품질을 유지 시키고 가격까지 낮게 할 수 있으니 기계의 일과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직업을 버리거나 기계가 할 수 없는 정교한 일을 해야 했다. 때에 따라서는 기계를 스스로 이용을 하기도 하여 더 빠른 방법으로 소규모의 대량 생산품을 만들기도 했다. 기계는 단순한 일을 위주로 반복적 일을 한다. 그 당시 사라지는 직업은 유행에 뒤떨어지거나 단순 노동의 역할들이 주로 사라졌다.
인간문화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더 이상 일 꺼리도 없는데(산업화에서 밀려나서 더 이상 찾는 고객이 없는지라) 그래도 계속 그 일 하라고 억지로 떠미는 일이다. 충북의 한 인간문화재는 한 달에 생활비를 80만원 준다고 하는데 동일한 인간 문화재를 경기도에서는 300만원을 준다고 한다.(직접 들은 이야기) 국가는 왜 생활비를 보조해 주는가? 이 직업이 없어 질것이 아쉬워 직업 유지를 위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가격이 그들의 중요도를 말하는 것인가?
사라져 가는 직업이 생활비 준다고 해결된다면 그 사람의 삶은 너무 단조롭다. 그렇게 받는 돈이라도 벌려는 직업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일이란 삶의 만족을 수반해야 한다. 이러한 인간문화재라는 직업을 단순히 해석하여 과거 직업 혹은 기술에 대해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라면 그 직업은 계속 퇴보된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식의 직업은 발전도 없을뿐더러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감흥도 선사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인간문화재를 보러 오는 사람들은 인간문화재의 예술적 감성, 혼이 들어간 작품을 예상하며 찾지만 기계화된 현대식 공방에서 절반 이상 기계에 의존한 장인의 명품은 아무런 감흥도 못 줄 것이다. 모자란 듯 보여도 손이 갖는 완성품과 모양이 제각기 다른 투박함에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열광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팍팍한 생활비 보조와 찾는 손님이 없어서 인간문화재는 고립되고 있다. 고립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인간문화재 권위가 스스로들에 의해 지켜지지 못했던 것에도 기인한다. 어설픈 공장 흉내는 관람객들에게 인간문화재 존재의 불신을 만들고 그들이 만든 작품에도 신뢰를 못 보내는 것이다. 그것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생활 패턴이 바뀌었다고 그렇게 말 하곤 하지만 책임을 세상에 돌리는 방법이다. 인간문화재는 역사학자들처럼 자신의 기술을 과거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 증명해야 한다. 인간문화재 칭호는 단순 기능인처럼 반복적인 일을 하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과거의 기술을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에게 붙인 칭호이다. 그리고 그들을 도와 미래적 상품을 만드는 조수와 과거의 전통을 계속 발굴하는 조수들을 두도록 담당 행정은 도와야 한다. 이것이 인간문화재에게 올바르게 투자하는 방법이다.
사라져가는 기능 위주로 인간문화재가 지정되다보니 인간문화재는 젊은 사람들에게 도통 관심이 가지 않는 직업이다. 밥 먹여 준다고 그냥 일하는 사람들을 찾기 어려운 시대이니 전수자들을 많이 두기 쉽지 않다. 그 일을 배워서 일을 하려해도 새로운 사업적 아이템으로 현대화를 시키지 못할 경우가 대다수라서 인간문화재가 되기 전에는 먹고 살길이 막막하다. 그나마 국가가 지원해주는 지원금에 의존하여 사는 수밖에 없으니 전수자가 되고 나중에는 인간문화재가 되려한다. 그리고 많은 수의 전수자들은 그들 아버지로부터 대물림 된다. 모두가 열정과 예술혼으로 인간문화재가 대물림 되었을까? 누군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자식이라도 그 일을 하려하니 다행이라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는 한 가정을 도와주려 인간문화재를 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라 전통 기술에 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잘하는 사람이 전통을 잇는 것이 맞다. 아무도 하지 않을 기술이라면 억지로 만든다고 몇 해를 더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사람 없다고 부족한 기술 가진 자식에게 대물림되는 기술은 물려줘도 걱정이다. 후진 기술을 유지 시키려다 탈창 걸린다.
그냥 들었던 이야기 중에 괴산에 대장장이가 있는데 가장 잘하고 오래된 대장장이는 정부의 시책을 늦게 듣고 서류를 내려했지만 근처 더 빨리 서류를 낸 사람이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육상 경기도 아니고 서류 먼저 냈다고 지정되는 것은 꽤 재미있는 코메디 소재다. 정부는 누가 잘하는지 꼭 알아보며 지정하기를 바란다. 어찌 되었든 지정이 되었다면 이제 국가 전통 기술에 대한 문제이므로 어떤 발전을 이루어 냈는지 검사도 병행해야한다. 그들의 작업을 체크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건도 만들고 미래적 방법도 모색해 보는 그런 지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 주위에 인간문화재가 있다는 것에 시민들은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지역 도시를 찾은 일반인들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지 못하는 그런 장인의 물품은 더 이상 자랑스럽지 못하다. 백수의 왕을 우리에 가두어 놓으면 하품만하며 생을 마감하는 방법만 터득하게 된다. 뛰어난 기술자를 하품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