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본 이야기/2창수의 세상 미술 이야기

전쟁을 이기려면 적장의 목을 베라

2창수맨 2015. 4. 14. 04:59

 

 

 

 

전쟁을 이기려면 적장의 목을 베라-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과거부터 여성은 수없이 많은 일을 하였으나 집안재산목록에 기록되는 인간이 아닌 물건에 가까운 대우를 받았다. 불과 백 년 전만 하더라도 여성에 대한 사회의 부당한 처우가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며 현재도 그러한 풍습이 유지되는 나라도 있다. 운전하는 여성을 보며 굳이 창문을 열고 밥을 해놓고 나왔냐고 묻던 시대도 한국에는 존재했다. 그 뿐만이 아니라 현재 종교 활동에도 자주 목격되는 미사포나 면사포도 순종을 암시하는 경우이다. 남성도 더러 수건을 쓰는 경우도 있으나 여성이 상대적으로 죄가 더 많다하여 중요한 행사 때는 사포 착용을 강요하는 관습이 아직도 있다. 죄가 많으니 중요한 자리에서는 하늘아래 똑바로 있으면 안 된다는 관습과 남편에 대한 순종의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결혼에서 등장하는 면사포는 순종의 의미를 띄는 흰색 면사포지만 이것 역시 남편에게 양도될 때 순종과 순결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관습적으로는 현재도 물건 취급으로 유사한 점을 보여 준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1,3?)는 바로크시대 이탈리아 여성화가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강한 시대에 미술가로 활동을 한 강렬한 여성이다.

 

한국에서도 300년 뒤 나혜석과 같은 강렬한 여성도 있었으나, 한국사회에서 나혜석은 무연고시신으로 언제 죽었는지 아무관심 조차 없이 사라졌었다.

물론 다시 기리는 것으로 보아 분명 좀 더 문명의 사회가 된 것은 다행이다. 여성으로 생활하기 어려웠던 바로크시대에 여성화가의 길을 택하였던 아르테미시아는 세상과 상대해야 했다. 19살 일찌기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녀는 남성전용처럼 되어있는 미술대학에 입학을 거부당한다. 그림을 배우기 위해 아버지와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던 아고스티노 타시에게 그림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타시의 혼인을 빙자한 강간으로 아르테미시아는 순순히 인정하며 살고 있었지만 타시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결국 소송을 하게 되고 재판 끝에 타시가 본인 아내에 대한 살해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처제와 간통, 오라치오(아르테미시아 아버지)의 작품을 훔치려는 것까지 밝혀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자신의 증언이 참이라 증명하기위해서는 고문을 견디어야 하는 거짓말 탐지 고문기구까지 통과하여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아르테미시아는 자신의 결백을 위해 고문기구를 통한 증언으로 사실을 인정받았다. 요즘과는 다른 고문을 통해야만 사실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문화차이도 있겠지만 진실을 밝히려면 감내해야 하는 또 다른 고통을 보여준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디트그림은 극한 명암대비법으로 생생하게 표현한 바로크시대의 그림이다. 종교적 치밀한 스토리와 극적상황의 표현으로 한번 본 사람들이라면 잘 잊혀지지 않는 명작이다. 그림에 등장하는 유디트는 유다의 여자라는 뜻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로 앗시리아 장군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투항한 것으로 적군을 기만하고 연회를 함께 보내다 둘만 남았을 때 목을 베고 전쟁을 유다가 이기게 도움을 주었다는 내용이다. 많은 화가들이 시대를 달리하고도 이 주제로 그림을 그린 극적인 사건이다. 다른 그림과 달리 아르테미시아는 등장하는 인물인 유디트의 모습을 여장군에 버금가는 모습으로 그려 놓았는데 이런 여장군외모에 현옥되어 장군이 침대로 부르고 살해당했다고 보기에는 믿어지지는 않는다. 분명 작가의 의도로 그냥 마냥 예쁜 여성을 그리기보다는 강한 여성영웅으로 표현하려는 의도로 제작되었던 것이다. 다른 작가의 그림에 표현되어있는 아름다운 유디트 모습과는 분명 차이가 느껴질 것이다.

 

젠틸레스키는 그림을 주문한 고객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시이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자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붓을 들고 있던 장군이었다. 아르테미시아의 용기는 페미니즘 운동에 중요한 역사적 근거가 되었고 그녀 생애자체가 훌륭한 인류의 기록이 되었다.

 

20154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자원외교 손실에 대한 점검이 확대되고 있다. 조준된 경남기업조사는 성완종회장 자살로 기업에 대한 검찰조사가 끝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죽음을 앞두고 한 성회장의 작심 인터뷰와 자필메모지로 인해 국민관심을 더 많이 이끌고 있다. 어떻게든 사실과 다르다는 것으로, 메모 사실여부에 관심을 돌리려고도 하였지만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사실로 쉽게 결정 났다. 경남기업 비리는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번 일로 해외자원외교 조사가 끝나는 것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강도 높은 조사로 적장을 죽였으나 죽이고 보니 적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간 검찰은 스스로 올바르게 일을 해왔다고 자평을 하였으나 국민은 믿기 쉽지 않다. 검찰 출신 정치인들이 하는 과거 경력과 현재 활동이 검찰미래라 인식하기 때문이다. 성회장이 돈을 주었다고 하는데 받은 사람은 안 받았다고 하고, 사업가는 친하다는데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유명정치인들이다. 선거 때는 정말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다 아는척해대더니 같이 선거 운동하러 다녔지만 모르는 사이라는 유명정치인을 국민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400년전 아르테미시아의 용기처럼 검찰도 "나는 검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입니다. 당신은 시이저의 용기를 가진 한 검사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편지를 국민들에게 보내기는 용기를 내기를 바란다. 그러면 한국인류사에 남길만한 가치로 기록되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