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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봄, 도쿄에서 공연된 첼피치의 <3월의 5일간>, 같은 해 서울아트마켓의 일본 쇼케이스였던 스트릿댄스 유닛 하무츤&사브의 <히토리데 데키루몽혼자서도 잘해요>, 2007년 모다페에 초청된 콜라보레이션 일본의 가장 컨템퍼러리한 공연을 소개하다오자와 프로듀서는 1990년부터 다이라쿠다칸Dairakudakan, 일본의 부토컴퍼니로 1972년 창단된 이래 80년대 이후부터 서구를 중심으로 일본의 부토를 알리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함의 기획자로 6년간 일했다. 다이라쿠다칸에 들어갔던 것은 전공 같은 것과는 전혀 상관없었다. 진짜 하고 싶은 일은 편집자였는데, 학생시절 이런저런 행사기획 경험을 돌아보니, 그것 역시 ‘입체성을 가진 편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후, 프리코그를 설립하기까지는 무대의상을 만드는 디자이너의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일을 했다.(한 잡지와의 인터뷰를 보니, 참치잡이배를 타기도 했단다.) “프리코그는 기본적으로 연극, 무용 기획제작사지만 회사의 운영을 위해 초기에는 연극제, 영화제의 사무국 일을 하기도 했다. 설립 준비를 하며 포스트메인스트림퍼포밍아츠페스티벌(Postmainstream Performing Arts Festival, 이하 PPAF)을 시작했고(2003), 첼피치Chelfitsch, selfish의 유아적 발음으로 극작/연출가인 오카다 토시키가 1997년 창단한 극단이나 컨템퍼러리 댄스컴퍼니 니브롤 같은 아티스트를 전속처럼 두고 기획, 제작, 매니지먼트하는 일을 했다. 2회 PPAF 직전 첼피치는 기시다 쿠니오 희곡상을 타고, 축제를 통해 쿤스텐페스티벌 디렉터에게 픽업되며 유럽 등 서구에서 아끼는 일본 연출가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다. 지금은 2000년 이후 활발한 활동을 벌이는 새로운 세대를 일컫는 ''제로세대''의 연극계 기수더아프로 ‘일본예술의 신조류, 제로세대’ 참조로도 손꼽힌다. 이렇게 함께 작업하는 아티스트가 속된 말로 상종가를 달리던 시기에 오자와 프로듀서는 스스로 프리코그를 후진들에게 물려주고 떠났다. 매니지먼트, “작품은 물론 인생까지 좌우하는 엄청나게 힘든 일”“일본에서는 기획제작사가 전속예술가나 컴퍼니를 끼고 있어야 공적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원래 계획과는 다르게 첼피치나 니브롤 같은 단체들의 매니지먼트를 맡았던 거다. 나보다도 스태프들이 더 원했다. 물론, 그들은 젊고 재능 있는 예술가들이고, 지금도 존경한다. 그들이 성장하면서, 지원금도 받았고 프리코그나 나의 인지도도 올라가고, 네트워크도 쌓였지만, 반대로 부담감도 커졌다. 함께 작업하던 아티스트가 뜨면 흥미가 없어지냐고 물었더니, 오자와 프로듀서는 농담처럼 “그렇다”고, 프로듀서가 아티스트의 명성에 기대어 먹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그렇지만, 그와 함께 백남준아트센터를 찾은 아티스트들이 그에게 갖는 신뢰와 친밀감은 절대적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티스트를 매니지먼트한다는 것에 대한 그의 정의와 무게감은 훨씬 더 엄격한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을 “주도적으로 작업을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더욱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억압하지 않고 추동하고, 하자하자 북돋워 젊은 예술가들을 ‘후리는’ 기술이 있다는 평이다.
세상의 사물과 이치에 대한 의심, 그리고 ‘재능’그가 현재 소속(?)되어 있는 일본 퍼포먼스/아트 연구소(이하 Japan Perfromance/Art Institute, 이하 JPAI)는 1인 조직이다. ‘퍼포먼스/아트’는 퍼포먼스 그리고(and), 혹은(or) 아트라는 의미. 연극 무용 같은 장르, 공연 시각 같은 분야를 구분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JPAI 즉, 오자와 야스오 프로듀서는 매년 12월에 하라주쿠 라포레Laforet, 모리미술관의 모기업이 운영하는 쇼핑몰 뮤지엄에서 ‘하라주쿠 퍼포먼스 플러스’를 기획제작하고 있다. 3~4일 정도의 기간 동안, 연극, 무용, 미디어아트 등 장르를 망라한 컨템퍼러리 축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상업지구, 민간기업 위탁이라는 행사의 성격상 대중적인 면도 고려한다고. 매년 3월의 동경예술견본시 쇼케이스 프로그램, 3년에 한번 열리는 ‘포스트메인스트림퍼포밍아츠페스티벌’ 디렉팅이 정기적인 활동이며, 그 외 요코하마국제영상제 퍼포먼스 프로그램이나 이번 백남준아트센터 프로그램 같은 기획프로그램, 퍼포먼스와 관련된 이론 강의 등이 주요 활동이다. “닥치는 대로 보는 편이다. 대체로 무용하는 사람들은 무용만 보고, 연극하는 사람은 연극만 보는 식이지 않나. 물론 지식이나 교양을 위해서 전시를 보기는 하겠지만, 그걸로 새로운 작업을 할 생각은 잘 안하는 것 같다. 나에게는 장르보다는 ‘재능’이 발휘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렇게 보다 보니 나름의 기준도 생기고, 발상도 잘 떠오른다. 어떤 장르 안에서 ‘제일 잘 팔리는 것’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것’ 같은 기준이 아니라, 그와는 다른 평가지가 있는 셈이다. 지금은 세계의 오카다 토시키가 되었지만, 처음 봤을 때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재능’이 보였다. 장르에 얽매이는 것은 관습에 불과하다. 다양한 취향을 보고 듣고, 장르를 횡단하는 것을 항상 중시한다. 본인이 속한 장르 이외의 것과 협업을 하면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작업이 생겨난다.” “24시간 그 생각밖에 안 한다”고 옆에서 어시스턴트가 거든다. 실제로 그는 5일 간의 한국체류 중, 이틀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하루는 미디어시티인서울에서, 나머지 이틀은 부산까지 내려가 비엔날레에 모든 시간을 바쳤다. 예술, 인문학 등을 정해진 커리큘럼이 아닌 독학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장르로부터의 자유’에, 보기와는 다른 치밀함이 더해져 ‘오자와 표’ 기획의 근간이 되는 셈이다. “인터뷰하면서 든 생각인데, 나는 연극, 넓게는 공연이라는 식의 장르가 아니라, 전혀 다른 관점에서 예술을 접하고 있고, 그게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작업이 좋네, 나쁘네, 하는 것은 나에게는 상관없다. 근본적으로 세상의 사물과 이치를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에너지다. 그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먼저 용기를 얻는다. 그런 사람에게, 의식적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끌리고 매료된다. “일부에게만이 아니라 확장되어야 한다”타고난 반골인 자신이 있을 곳을 찾아 유영하다 찾은 새로운 예술적 시도에서 본인이 먼저 용기를 얻는다는 프로듀서. 그런 것을 발굴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심지어 그가 용기를 얻는다는 예술작업들은 하나같이 한줌의 관객밖에 모으지 못하는 작업들이다.(적어도 초기에는) “이번 백남준아트센터의 프로그램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의뢰를 받았고, 그래서 이런 환경에서 무엇을 하면 최상일까를 고민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이게 최고인 것 같아서 소개한 것이 아니다. 백남준아트센터에게, 한국의 예술계에게 어떤 걸 보여줘야 좋을지를 굉장히 고민했다. 이번에 소개한 사람들은 모두 ''씨앗''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사람들이 보고, 함께 작업하고 싶어 하고, 그게 점점 확장되면 좋겠다. 사운드아티스트인 우메다 테츠야가 무용음악을 맡거나 하는 식의 구체적인 확장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믿고 애를 써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예술은 가치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름답다, 추하다, 훌륭하다, 재미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새로운 가치관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기본이다. 공연이건 조각이건, 설치미술이건 새로운 관점, 시각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속박 없이 그런 일을 사명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예술뿐이다. 예술이 가진 영향력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결국은 거짓이라고 해도 나는 그것을 믿는다. 믿고 애를 써서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예술을 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거나 새로운 사회, 인간의 비전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과학은 반복적인 실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예를 들어 병을 낫게 한다든지-을 보여주지만, 예술은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사람의 정신, 마음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 나도 “그래서 뭐가 가능해?”라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그냥 하는 거다. 다만, 백남준 선생이 그랬듯, 늘 진지한 것이 아니라 장난기도 있고, 쿨하기도 하고, 그렇게 있고 싶다.” 백남준아트센터의 국제퍼포먼스시리즈의 마지막 날 열린 라운드테이블 ‘지금, 여기, 퍼포먼스를 경험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에서 페스티벌 봄의 김성희 디렉터는 이번 퍼포먼스 시리즈의 후기로 오자와 프로듀서를 “일본 컨템퍼러리의 보석”이라고까지 추켜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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