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고 싶은 2창수 그림/2창수의 그림 이야기

오이의 죽음

2창수맨 2011. 4. 4. 23:46

 

오이의 죽음

아무런 중요한 일이 없더라도 별 다를 것 없는 행위들끼리 합쳐진다면 우린 거기에서 이상한 중요함을 느끼곤 한다.

말 안 듣는 사람과의 대화를 하다보면 대화중 흥분으로 인하여 얼굴이 붉어지거나 상대방의 반응으로 인하여 서로 언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감정을 어느 정도 다스리고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 당시에는 감정 조절을 하느라 서로 간 옥신각신하는 경우를 수없이 경험한다.

 

 

작가노트 / 오이의 죽음, 30×60×15, 유리판 위에 아크릴물감, 2010

 

오이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재료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를 하므로 계절과 상관없이 구입하기도 무척 쉽다. 우리가 먹으려고 재배 하는 것 이므로 당연하게 그들을 자르고, 껍질을 벗기거나 때론 기름에 볶기도 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오이를 음식으로 섭취하는 것은 오이에게는 오이의 주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이를 대화의 대상으로 취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하찮은 오이에게 나는 화를 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오이 역시 나에게 화를 낼 수 없을까?

두 사물들을 섞어놓은 이 그림은 둘 간의 관계를 보여준다. 우리와의 관계는 이미 지난 일이 되었지만 부러진 화살과 껍질이 벗겨진 오이의 관계는 새로운 사건의 시작에 있다.

부러진 화살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가르침에서 흩어져서 부러진 화살이다.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누구의 손에 의해 껍질이 벗겨진 오이는 주관적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개체이다. 둘 간의 사건은 우리에게 얼굴을 붉히는 흥분은 주지 않겠지만 둘 사이에는 그보다 뜨거운 주제가 존재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미술은 거짓으로 진실을 말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