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 생존 정책
Artist 2창수
생존의 본능을 외치며 살던 때가 있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가 부자가 되었다라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이거야~~ 잠자는 것이 불안하여 뭔가를 하지 않으면 사회적으로 도태 된다는 생각이 스믈스믈 나던 시대이다. 생존의 시대는 1인당 국민소득(GNP) 10,000불이 되었을 때 문화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생존의 시대가 막을 내린다고 한다. 1950년대 제국주의의 종말이 고해지고(이렇게 보는 것이 낫을 것 같다.) 1980년대까지 이데올로기 싸움이 항창일 때 우리나라는 온 국민이 힘 합쳐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1995년이 한국이 10,000불 돌파를 했으니 생활의 시대는 1995년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98년 국제통화 기금을(IMF) 받고 다시 생존적 환경이 조성 되었다. 이런 생존환경에서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살 틈도 없고 연약하게 겨우살이를 해왔다.
중국 호북성 박물관의 식기
삶이 팍팍 할 때 말랑한 생각을 가진 낙관적 자유론 자들은 본능에 의존하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것중 하나가 오늘보다는 내일이 낫을 것이라는 기대감인데 그런 기대감에 충분히 부흥하며 한국은 지속적으로 발전 해왔다. 발전의 속도는 여태껏 비교 대상 나라가 없을 만큼 재빠르게 이루어 져왔다. 단기간에 결정을 내리고자 중앙집권을 강화하였고 중앙의 결정이 곧 법처럼 빠른 행정적 절차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다른 산업이 만들어 내는 것처럼 잽싼 결과를 만들 수 없는 문화는 자연 소외되었다. 최고 권력자들에게 칭찬을 받을 꺼리가 없는 한계도 보였지만 문화란 지속적 투자를 통해 서서히 만들어 진다는 사실이 선전꺼리가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통치자가 인지했을 것이다.
미술인들은 과거 쟁이의 수준이상 사회적으로 존중 받지 못했다. 대학에 학과가 개설되고 학사, 석사 출신 미술 전문가들이 만들어 지기까지 전문 미술인이라는 것은 돈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여흥을 돋구어주는 그냥 기쁨 주는 직업이었다. 가격이라는 것도 없고 밥이나 먹여주고 한번 해봐라 하면 고개를 조아리고 원하는 것 그려주는 수준으로 미학이나 예술적 관점은 후대에 억지로 가져다 맞춘 것이지 사조를 구성하고 의미를 주장했던 경우는 찾기 힘들다. 취화선 덕분에 더 유명해진 오원 장승업의 경우 궁중의 벼슬과 여러 회유 등을 버리고 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우러 떠돌이 했다고 칭송하긴 하는데 그 시대를 살지 못했던 입장으로 어떤 것이 진실에 근접할까란 참 곤욕스럽기까지 하다. 영화상으로 기억나는 대목은 궁중 화원들의 중국 화풍적 사조를 읊조리는 상황을 경멸하고 그런 자들과의 거리를 멀리하며, 차차 밖으로 떠도는 해의반박(解衣般礴)의 전형적 모습으로 보여진다. 현실을 외면한 관념적 사조에 대한 일종의 경멸이 아닐까한다. 그런 그에게 자신 만의 필치 철학을 운운하는 것은 너무 과한 해석이 아닐까?
해의반박(解衣般礴)은 장자의 말인데 송원군의 고사에서 나오는 말이다. 원군이 그림그리라고 시키는데 늦게 온 화공 하나가 인사도 대충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니 궁금해 뭐하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했다. 쪼르르 가서 몰래보니 옷을 풀어 헤치고 헤벨레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원군에게 일러바치니 원군이 진정한 화공이라고 치켜세운다는 일화다.
石濤 梅花圖
속박을 이해 할 때 무엇이 속박인지 알아야 한다. 결국 해의반박은 물아교융(物我交融)을 만들어 내기위한 과정의 시발점으로 내가 무엇에 속박이 되었는가를 알아내는 과정이 들어간다. 아! 점점 어려워진다. 그냥 짧게만 정리 하자면 석도(石濤1642?~1707?)의 주장인데 일생동안 창작을 두 가지 단계로 나누어 본다면 산천이 나에게 태(胎)를 벗는 단계, 내가 산천에 태를 벗는 단계를 말한다. 「태를 벗는다(脫胎)는 것은 본래 도가(道家)의 용어로 이른바 범인의 태를 벗어버리고 신선의 태로 바꾼다는 뜻인데, 석도는 이를 빌어 화가와 산천 자연의 관계를 나타냈다.」<갈로저 중국회화 이론사> 이건 논문이 아니므로 궁금하면 각자 찾아서 살펴보시고…….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속박을 어떻게 해석을 하고 또 그것을 사회가 어떻게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시대는 미술가들의 쟁이적 접근 방식은 맞지 않는다. 석도의 경우만 하더라도 1600년대 후반 사조 유행에 빗대어 작품론 주장을 하였다. 표현이 중요하나 그것이 왜 중요한지 밝혀내는 것은 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것에 대한 결과를 만들어 낼 때 비로소 미술가는 사회에 자신의 이론을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이 사회에 받아들여지거나 다른 문화적 연대를 형성하면 고유한 특색 있는 지역 색과 어울려 문화로 자리 매김 된다.
미술은 자연에 대한 찬미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미약한 스스로를 알고, 모르는 것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없애기 위해 종교를 가지게 되는 것처럼 그러한 종교적 의미를 찬미하기위해서는 미술이 필요로 했다. 사회를 만들어 내기위한 내부 결속 의미로 미술이 출발한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의 근간적 삶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공허 하다. 그것은 현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평행선을 그리는 듯 한 느낌이 생기기 때문인데 위의 이야기도 그리 현실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 미술가들의 생활은 사회가 책임지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한 생존을 넘어선 생활이 되더라도 사회는 최대한 적은 책임을 지려 할 것이다. 몇 차례 어떤 지원책을 만들어 놓으나 그것으로 미술가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가짜 영수증을 통한 공금 유용, 카드깡을 통한 현금 거래나 지원금에 맞추어 필요 할 것이라 믿는 물건을 잔뜩 구입 말고는 없다. 지원금 감사를 한다고 했을 때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는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미술가는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위해 나름 금전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연구를 해야 한다. 쥐꼬리만큼 주기도 하지만 생활비로 전혀 사용 할 수 없는(불법 없이 한다면) 지원금에 의존한 작품 활동은 생활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름 생각해본 결과 농사가 자연스러운 미술가들의 해결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제대로 농사 경험이 비천한 도시 출신 미술가의 현재 생각이라 좀 문제가 많다. 현재 청주와 청원의 통합에 들떠있고 대응에 노력하고 있다. 인구는 특별히 늘지도 않았으나 땅은 데따 늘었다. 청원 주민들은 금방 도시화가 된 것처럼 기분이 들떠있겠지만 대전과 달리 20년이 지나도 도시화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과거 도시화 방식처럼 대 놓고 밀어부처 산을 없애고 낡은 집을 없앨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환경을 고려하는 도시가 될 확률이 높고 농사짓는 농업화 도시가 될 것이 높기 때문이다. 인구 유입이 그 닥 훌륭하지 못 할 것이기 때문에 도시 외곽의 농토가 그대로 유지될 확률이 높다. 새로운 노동력이 유입이 되지 않는 한 고령화로 인해 노는 농토가 늘어날 것은 뻔한 일이다.
도시에서 거주하는 예술가들에게는 시간과 노동력이 있다. 이러한 노동력을 도시 농업에 사용하면 어떨까 한다. 이렇게 일을 하는 예술가에게 일정부분 노동 비를 통해 노동을 장려 한다면 그간 있어왔던 작가지원의 방식보다는 좀 더 진화한 의미 있는 진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노동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산출을 원한다면 농사 수확량에 대한 지원책도 있다. 지역 단위 수매와 파종 등의 지원을 통해 작가들을 모으고 지역의 휴 경작지에 대한 표본 조사를 통한 할당이 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미원소재 이희영작가의 연밭
그간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 하였지만 정작 예술가들의 사회적 의무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어본 적이 없다. 생존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생활적 환경이 된 오늘날 생존의 위기와 싸우고 있는 예술가들의 방식에 대한 진지한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하겠다. 그것은 적어도 땀을 흘리지 않고는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그로인해 다른 영감을 얻으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만일 이러한 준비가 되어있는 예술가들이 있다면 지역 정부는 꼭 도와야 할 것이다. 그간 지원금을 밑 빠진 독처럼 사용하거나 받아도 사용하기 버거운 예술가들이 아닌 좀 더 장기 투자 적 문화 예술 진흥책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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