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림 이야기/다른 사람이 본 나의그림 이야기

이창수의 투명성 / 김승환(충북대교수/문학평론가)

2창수맨 2010. 8. 30. 17:38

이창수의 투명성

 

 

김승환(충북대교수/문학평론가)

 

이창수는 여러 장의 유리에 심상을 입혀 작품을 만든다. 회화이기는 하지만 전통적 회화와는 다르기 때문에 보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난처함을 동시에 선사한다. 유리에 고등어를 가두고, 초록 풀잎을 새기며, 냄새를 체포하는 저 행위는 무엇이고 그 의도는 또 무엇인가? 교과서적인 차원에서 이창수의 작품을 보면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과연 이창수는 화가인가, 조각가인가, 설치예술가인가, 공예가인가 아니면 백남준식의 사기꾼인가?

아마도 이창수의 작품을 보는 분들은 위와 같은 의아심이 들 것이다. 현대예술에서 장르를 구분하고, 칸막이를 높이며, 다른 영역을 배타적으로 보는 것은 구시대적 오류로 간주된다. 또한 작가가 어떤 매체를 사용하든, 어떤 것을 표현했든, 어떤 과정을 거쳤든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떤 개념을 가졌는가가 중요하다.

이창수 예술의 정수에는 개념(concept)이 들어 있다. 그의 작품을 단지 그림으로 보는 것은 이창수를 오독하는 것이면서 그의 작품을 모독하는 것이다. 그는 현대예술의 특징 중 하나인 개념으로 사유하고 개념으로 작업하며 마침내 개념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런 그의 작품을 선, 면, 색채, 구도 등의 전통적인 틀에서 보게 되면 미로(迷路)에 갇히거나 전통에 포획되어 버린다.

현대의 개념예술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예술작품을 만드는 행위가 매우 적거나 아예 포함되지 않으며, 전통적인 예술가들이 사용하는 예술의 기법이나 미적 감각 등도 중요하지 않다. 또한 개념예술에서는 기호, 상징, 문자, 퍼포먼스, 사진, 도표, 표어, 낙서, 지도, 비디오 등과 같은 표현도 포함된다. 개념예술은 저항의 성격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랑이나 미술관 등의 예술권력이나 작품에 서열을 부여하는 상업주의도 거부한다.

이창수가 개념으로 잡은 것은 투명(transparency)이다. 그는 화구, 화판, 종이 등의 전통적 도구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자기만의 개념을 부여하여 투명한 매체로 바꾸어 버린다. 특히 유리나 아크릴이라는 질감을 살리면서 거기에 이미지를 형상화한다는 것은, 오브제(object)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으면 불가능한 작업이다. 유리와 같은 매체의 본질을 통찰하고 그 투사의 시선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이창수가 생각하는 개념이다. 이래서 우리는, 즉 관람자는, 이창수의 개념에 갇히게 되는 것이며 그 속박은 즐거운 예술적 유희가 되는 것이다.

오브제에 대한 자기만의 개념을 가졌으므로, 이창수는 그만의 눈으로 생활 주변의 물체를 관찰한다. 그의 관찰이 머무는 곳에 투사라는 이름의 해부가 실행된다. 그와 동시에 역설이라고 해야 할 실루엣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사람의 시선을 가로막는다.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은 이창수가 설치한 덫에 걸려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다. 미술과 생활을 분리하지 않는 이창수에게는 프랑스미술과 한국공예의 경계가 없고, 판화와 조각의 경계가 없으며, 작품과 작품 아닌 것의 경계가 없다. 생활예술, 다원예술,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이면서 리얼리즘인 그의 예술은 이런 해석조차 거부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가장 포스트모더니즘적이면서 안티 포스트모더니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