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헤게모니 Cultural Hegemony 文化霸权
어렵게 회사에 취직한 P는 깜짝 놀랐다. 옆의 동료 K도, 앞의 동료 Q도 루이뷔통 가방을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심리적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P는 자기 월급의 2배가 되는 그 가방을 사고야 말았다. 현대사회의 여성이라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이처럼 P가 과도한 소비를 한 것은 의식이 식민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P의 이런 소비행태는 자기가 결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배계급이 설계한 덫에 걸린 결과다. 그러니까 P는 상류계급의 취향을 기준이라고 오인하고 그 기준에 떨어지는 자기를 부끄러운 존재로 설정한 것이다. 이것이 그람시가 말하는 동의의 가면(masks of consent)을 쓴 강제와 억압 즉, 자발적 동의다.
이태리의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A. Gramsci, 1891 ~ 1937)는 이것을 문화적 헤게모니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대중들은 상류계급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기를 지배하는 방식에 동의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병을 앓아 작고 약한 신체로 일생을 살았던 혁명가 그람시는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주아가 어떻게 지배력을 행사하는가에 대한 답으로 문화적 헤게모니를 제시했다. 이것을 그람시는 언론의 미디어와 교육을 통해서 확산되는 문화의 지배력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문화적 헤게모니는, P가 그런 것처럼, 대중과 노동계급이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하고 지배계급에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것이다. 지배와 피지배를 문화적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문화적 헤게모니는 문화제국주의(cultural imperialism)나 문화적 제노사이드(cultural genocide)와 같은 개념이고 문화재생산이론에서 나타나는 은폐된 폭력이자 신분상속의 구조적 모순이다.
이태리의 섬 사르데냐에서 출생하여 하층민들의 고난을 잘 알고 있는 그람시는 자연스럽게 공산주의자가 되었다. 이후 산업이 발달한 토리노의 대학에 다니면서 노동자와 노동계급에 대한 탐구를 지속하여 1921년 이태리 공산당을 창건한다. 그리고 그는 부르주아 독재가 심각하고 프롤레타리아 노동계급의 고통이 심화된 이태리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실천에 옮긴다. 하지만 그람시는 이태리 노동계급이 자기 계급의 이해를 반영하는 공산당을 선택하지 않고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지지하는 참담한 역사적 상황에 직면했다. 얼마 후 파시스트 정권에 체포되고 투옥되었는데 여기서 그람시는 <옥중수고(The Prison Notes)>(1929 ~ 1935)라는 글쓰기를 계속하여 문화적 헤게모니를 밝혀냈다.
원래 헤게모니는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V. Lenin)이 말한 민주적인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가 행사하는 정치적 주도권을 의미한다. 그람시는 이것을 전유하여 러시아보다 자본주의 모순이 심각하고 경제공황으로 대중과 노동계급의 삶이 어려운데도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는 원인을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문화적 헤게모니라고 분석했다. 대다수의 서구사회에서 노동계급이 늘어나고, 노동조합이 결성되며, 노동자 정당이 설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계급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류계층이나 부르주아 문화를 동경한다. 특히 부르주아들이 행사하는 문화적 헤게모니는 교육, 민속, 민족, 종교와 연결되어 있고, 지식과 가치관을 통제하기 때문에 육체는 물론이고 정신이나 영혼까지 속박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시민사회(civil society)가 발달한 선진 서구사회보다 정치사회(political society)였고 차르 독재체제가 심화되어 대중들의 허위의식(虛僞意識)이 없는 러시아에서 혁명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상류지배계급과 부르주아의 입장에서 보면 대중과 노동계급의 의식을 마비시키고 자신들의 지배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데 성공한 셈이다. 따라서 동의라는 가면으로 위장된 헤게모니는 지배와 피지배의 모순을 은폐하는 부르주아의 지배전략에 불과하다. 한편 헤게모니에 포획된 대중과 노동계급은 사회구조를 바꾸는 저항이나 혁명보다 현상태(status quo)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신분상승을 도모하거나 지위 투쟁을 벌이게 된다. 이처럼 문화적 헤게모니 즉, 문화를 통한 고상한 지배는 이데올로기를 조작하여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지배계급의 전략이다. 이런 그람시의 사상은 경제결정론이나 역사유물론을 기계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역사적 맥락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고려했다는 특징이 있다.
- 끝 - (충북대교수 김승환)
인문천문 목요학습 K-260 Thursday Study 星期四学习 2013년 3월 14일(목)
*참고나 인용을 했을 경우에는 출처를 밝혀야 합니다. 표절은 범죄입니다.
*참고문헌 Selections from the Prison Notebooks of Antonio Gramsci, eds., Quentin Hoare and Geoffrey Nowell Smith, (Int. Publ., 1971).
*참조 <계급의식>, <계급투쟁>, <공산주의적 인간형>, <리얼리즘>, <상징폭력>, <유물론>, <하위주체>, <혁명적 낭만주의>, <허위의식>
'세상 본 이야기 > 옆 사람이본 세상 미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방론 Mimesis Theory 模仿 (0) | 2013.05.16 |
---|---|
병든 동물 인간 Sick Animal Human 生病的动物人类 (0) | 2013.05.05 |
지각우선의 지각현상학 Phenomenology of Perception 知觉现象学 (0) | 2012.03.25 |
술이부작 Pass on the ancient culture and not to create 述而不作 (0) | 2011.11.04 |
바움가르텐의 진선미 Good, Truth and Beauty by Baumgarten (0) | 2011.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