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블릭 아트 서면 인터뷰 2013.7
1) 항상 다음과 같은 문제 사이에서 예술(가)는 부딧친다. 예술의 자율성/예술의 기능성(function).
예술 혹은 예술가는 자율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어떠한 기능(예를 들어 정치 사회참여)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하는가. 의견과 자신의 활동사례를 중심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예술이란 개념 정리는 개인의 특수성에 기인하기에 누구의 주장이 맞고 누구는 틀리다라고 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유연한 주장을 하자면 그의 주장도 맞고 전혀 다른 반대의 주장도 맞다고 보는 것이 현대 미술의 보는 법이 것일 겁니다. 나의 주장이 다를 수 있지만 틀린 것이 아니라는 밑밥을 먼저 이렇게 깔고 합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을 남들이 왜 아름답다 느껴야 하는가?’ 이런 과정에서 보편성과 미래적 방법을 제공 하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기능성으로 해석되는 것을 넘어서는 현실사회에서 왜 이것을 아름답다 느껴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작가적 실험을 통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세상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 시점이 정확해야 한다. 자신의 신념에 대한 현실 참여가 중요한 것이지 사건에 대한 반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한 현실의 해석은 물론 미래적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실 미술계의 고질적 문제점은 자생이 안 되고 기금에 의존한 기생적 미술 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많은 미술 단체는 기금 의존적 행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 외 다른 단체가 못하도록 여러가지 훼방을 놓고 뒤로하는 거래가 활성화 되어있다. 계속 그렇게 가면 거지끼리 자리싸움하는 꼴을 극복하기 어렵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동네의 미술 잡지이고 그러한 이야기를 다양한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일을 한다. 정화는 정보가 공유 될 때 가능 하리라 생각해서이다.
2) 예술가 공동체는 보통 대안공간으로 제도화 된다. 그리고 제도화된 대안공간은 다시 각종기금을 통해 행정적으로 제도화 된다. 흔히 나오는 이야기지만 제도화된 대안공간은 공적기관의 업무를 '대행'하는 성격을 일부 지니게 된다.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는가 부정적으로 보는가? 그리고 왜 그런가? 의견과 자신의 활동사례를 중심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제도화 하지 말자고 만든 대안 공간이 제도화 되는 것은 최초 그들이 주장한 신뢰에 위배되는 행위이다. 비판과 주장이 강했지만 결국 스스로 유지조차 못하고 대중성도 확보 못했으니 유지를 위한 기금 의존 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미 대안 공간은 소수 몇몇에 의해 운영이 되었으며 문화 권력화가 되었다. 다양한 실험을 오히려 막고 대안공간 내에서 실험을 해야한다는 권력이 되었으며 그로인해 개인 성향이 강한 작가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지역의 학예사들의 적당한 권력을 보여주는 자리가 되었으며 그로인해 작가 줄 세우기 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공정한 미술계는 공정한 평가가 수반 되어야 하는데 예술 단체들이 공정한 평가를 막는 권력으로 작용 하였다. 그러한 점에서 대안공간도 일조를 했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공간 유지 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무리한 국제화, 의미없는 대형화를 통해 공간 알리기에 주력 하지만 소모형 일을 일삼으며 기금이 끊어질때 사라지는 대안 공간이 될것이다. / 사례라기 보다는 느낀것 위주로 썼습니다.
3) 제도화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면 어떻게 자치가 가능한가?/ 혹은 제도화에 긍정적이라면 어떻게 자치가 가능한가? 의견과 자신의 활동사례를 중심으로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예술의 본질은 인류가 만들어 놓은 다양한 가치관, 관점에 대한 기록이다. 이러한 것을 수용하려는 노력으로 다양한 방법적 도움을 주고자 새로운 대안공간, 탈 갤러리 선언, 비엔 날레 등이 수용에 대한 노력이다. 관점의 다변화가 대안공간의 역할인데 오히려 고정된 유행 관점 재생산 문화 권력을 통한 사회적 강요의 모습으로 비추어 지고있다. 더군다나 소수 몇몇에 의한 권력독점은 새로운 의견 수용도 어려워지는 개인적 대안공간으로 되었으며 그것을 이용하여 더 상급 기관으로 취직을 위한 전초 기지가 되었다.
4) 예술가 공동체는 실제로 어떻게 형성되는가? 그러니까 어떤 만남의 방식이 있는 것인가? 다양한 만남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씀부탁드린다. (예: 수원 지동에서 술 먹다가 누구를 만나서 소개를 통해 누구를 만나고..지금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예술가들은 몸소 체험을 중요시 한다. 작가의 능력은 작품을 통해 느끼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를 통해 작가의 그림과 작가의 지적 세계를 나름 평가 한다. 이렇게 알게 된 작가들끼리 술을 먹거나 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지낸다. 작가들은 각기 개인 작업실이 있기때문에 작업실 방문도 좋은 관계 유지의 방법이다. 작가들끼리 공동체적으로 알게 되는 경우는 레지던시 같은 공간에서 오랫동안 꾸준한 만남이 있어야 좋은 관계가 유지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미술하는 사람끼리 있으면 미술의 문제점을 해결 못한다는 생각을 가지고있다. 해결이 가능한 타 장르 전문가들과의 조인이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선호한다. 그렇게 만난 개인적 예술공동체는 역사학자, 시인, 방송인, 언론인, 공무원 등 이다. 결국 사회 공동체는 다양한 장르의 장점을 어떻게 융합시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5) 공동의 연대의 필요성은 언제 느끼는가? 여러가지 예를 들어 생각을 충분히 말씀해 주시길 바란다.
책임은 없지만 문제해결을 위해 힘을 합하는 연대개념이 좋다. 공동연대를 위해서는 의식의 접점이 중요한데 미술이라는 분야에서 공통의식을 만들기는 어렵다. 다만 이익과 결부되는 1차원적 사건에 대한 공동연대의 반응이 있는데 결국 다른 분야의 사람들에게 이익을 위한 공동연대라는 모습밖에 보이지 못하는 것같다. 대중을 멀어지게 하는 요소로 오히려 작용하는것 같다.
6) 대부분 공동체 담론은 다시 좌파담론 나아가 좌파정치와 연결된다. 그리고선 여러가지 노선으로 나뉘어 서로간 당파 싸움을 하기도 한다. (현재는 이념이 없다고 하지만 과연 그렇지만도 아는 것 같다.) 공동체는 서로 잘해보자고 뭉친 것인데 뭉쳐놓고 보니 발견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동체의 불가능성이랄까. 예술가로서 예술가 공동체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념의 공동체인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공동체인가? 여기에 대해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생각을 말씀해주시길 바란다.
예술가 공동체가 어려운 이유는 예술은 기존예술에 찬미하는 집단이 아니기때문이다. 특히 미술은 더욱 그러한데 현실을 이해하고 미래에 대한 자신의 미학적 방법에 대해 주장하는 학문이기에 현실을 굳이 긍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 관점은 서로간 의견 충돌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동체의 범위를 더 넓게 보아야 예술가 공동체가 가능하다. 하나의 일을 한다거나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단체가 아닌 각자의 주장을 더 넓은 틀로 안아내는 공동체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 다양성을 수용해 주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것은 장르간의 모임이 아닌 예술가의 불편한 점을 해결해주는 공동체가 어떨까? 한다.
7) 사회적기업/협동조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예술과의 접점이 어느 지점까지 있는가?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점에서인가?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시장 경쟁체제와 견주어 판매 가능한 재화 창출이 가능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미술은 노동력을 통한 인건비 외에는 상품적 가치가 없다. 주위 많은 것들이 이미 공산품 화가 되어있는데 조약한 수공 상품은 인건비, 재료비에서 가격 경쟁이 되기 어렵다.
가능하다면 아이디어를 이용한 새로운 기술, 특허 등을 통한 사업은 가능하다 생각한다. 상상을 현실화 시켜줄 수 있는 기업, 정책과의 조인이 중요하다.
8) 현재 소위 커뮤니티아트는 관계를 다룬다. 그 관계란 사실 공동체의 불화와 재조정 또다른 불화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 예술가가 개입했을 때 생기는 관계의 실체란 무엇인가? 아티스틱한 관계란 것은 있는가? 아니면 실제의 갈등과 불화를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 예술가가 관계를 다루는 방식인가?
예술가는 세상이 움직이는 방향을 예측하고 더 나은 방향에 대한 제시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미화하거나 단순 즐거움을 위한 일은 공예나 상품 제작 적 미술품들이 하는 일이다. 자본주의가 생활 깊숙히 침투하여 우리는 미술도 자본주의적 가치에 너무 익숙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미술은 인류의 유산을 만드는 숭고한일이다. 커뮤니티아트역시 그러한 미술의 중요함을 일반인들에게 알리는 일이 주된 것이다. 현재 상품적 미술이 미술의 전부로 인식이 되어 가고 있기에 올바른 미술의 가치를 오늘의 현실에 맞추어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
9) 진행하고 있는 (혹은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개괄적으로 설명 부탁드린다.
권력화 되어있는 미술계 없애기, 미술관장 비 미술인으로 채우기(전문 경영인으로 기존엔 미술인이나 고위 관료들의 자리 처럼 인식되어 졌다.), 지역에 몰래 하는 예술 지원금 까발리기, 지역 역사와 미술기록 시도(이주여성이 갖는 국가관에 대한 혼란), 100여 년 된 외국인 화교에 대한 지역성과 민족성에 대한 융합, 진행 중인 것들이고 설명이 너무 길어 질것 같아요.
지역을 기반으로 그 지역에 맞는 방법으로 해석하고 그 해석을 지역민들에게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중앙에 의존 하거나 중앙과 같아지려는 것에 대해 부정하고 중앙과의 어떤 차별적 특징이 있는지 밝혀내는 일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역할이라 믿으며 지역 역사를 근거로 현대 사회를 해석하는 일,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0)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지역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도시 재생에 대해 예술인 거주 인센티브 제도화하여 지역 예술인 거주 지원책을 법제화 시키려 함.
예술가들의 아이디어를 사고 팔 수 있는 회사를 설립 하였는데 활성화 시키려 함.
예술가의 자율적 공동체에 대해
시대가 필요로 하고 그럴듯하게 하나의 주제로 세상을 묶어 해석하기위해, 학식있으신 분들은 그럴싸한 말로 해석 하려하는데요. 사실 예술가들은 오래전부터 자율적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현재 있는 단체(예총, 민예총)들도 그러한 공동체의 결과이고 보면 그 단체의 수장들이 어떻게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정치에 끼어들어 얻어 먹이다 보니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누군가의 이익을 대신 이야기하는 단체가 된 것입니다.
문화는 중심에서 외곽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각기 존재 하는 곳에서 중앙으로 흘러 모이는 것이지요. 한국의 경우 부정적 조선 후기의 상황과 일제 지배, 한국 전쟁을 거치면서 과거의 잘 못된 것을 버리고 새로움을 주장 할 수밖에 없는 역사였기에 문화적 토양이 약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중앙에 의존적인 상황이 된 것으로 생각 됩니다. 급격한 발달은 중앙에서 파생되어 주위로 전파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제 생존의 시대가 지나고 생활의 시대를 넘어서 문화의 시대가 도래 했습니다. 이 문화의 시대는 남과 같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개인적 독특함이 존중 받는 시대입니다. 문화가 어느 누구의 지배적 개념이란 믿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죠. 세계를 이끄는 자본에서 예술문화의 특수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예술가 공동체의 숙제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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