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본 이야기/2창수의 세상 미술 이야기

마르크스주의와 미술

2창수맨 2018. 1. 14. 17:48

 

마르크스주의와 미술

 

Artist 2창수

 

18세기 계몽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펼쳐 나가고 있을 때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성장되고 있었다. 다수의 사람들은 자본의 논리대로 일하고 생각하게 되었고 새로운 거대 자본 계층의 증가도 나타나게 된다. 이것은 부에 대한 공평하지 못한 상황으로 나타난 사회 현상이었고 부의 독식이 지속되자 몇몇 신진 이념가의 주도로 사회주의가 생겨났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시장에 반대하였으며 자본가들에 의한 노동력 착취, 생산수단 독점과 같은 당시 이익을 극대화 하던 경제 체제를 비판하고 계획적 생산과 분배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마르크스(Karl Marx, 1818~1883)는 인간의 생존은 물질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인간이 가진 의식으로 사회적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 생각이었으나 마르크스는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다수의 계몽이 필요한 대상들(군중)에게 선전의 방법이 필요하였다. 자본주의가 붕괴되고 계급 없는 유토피아의 세상이 시작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예술가는 새로운 사회에 이르는 길의 포장공사에 종사해야 한다고 했다.(조요한, 예술철학 185-6p) 마르크스와 같은 공산주의의 미술에서 요구하는 것 또한 미술가 관점에서 사회를 보거나 표현하는 것이 아닌 공산사회 건설에 필요한 선전의 도구로써 미술을 이야기했다.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던 미술과 달리 집단화되어야 했으며 조직화 되어야 했다.

 

브루주아계급에서 주문당하던 미술가들처럼 공산주의 미술가들 역시 프롤레타리아 미술은 공산당의 지도에 의해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 공산당에서 주장한 미술은 계급투쟁의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정치적인 주문을 따르는 공예가들의 모습으로 미술가들은 바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Gorki(본명 A.M.Peshkov)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하여(1933)에서 작가는 전국에서 일하는 인민의 지도자이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의 교사이고, 당의 애정에서 탄생되어야 한다.” 고 말했다. 작가는 계급의 감각기관이 되어 날카로운 감성을 가지고 계급투쟁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고 했다.(조요한, 예술철학 186p)

 

공산주의의 미적 가치의 기준은 일반적인 미적 기준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적가치의 중심에 두는 것이 개인적 심미 기준으로 작품을 보는 것과 달리 사회적 심미기준으로 작품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심미를 판단하는 주체는 정치적 기준에 의해 가치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감상자가 갖게 되는 감정의 판단도 정치적 제안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문화를 만들어내고 문화를 이끄는 힘의 원동력이 산업 생산에 있다고 마르크스는 생각했다. 특히 산업의 생산양식 변화로 사회 변화를 이끌고, 이 변화가 상류 사회의 정치, 사회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과거 미술은 경제를 바탕으로 표현 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곧 궁핍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결국 부자와 대중을 나누어 놓는 좋은 수단으로써 미술이나 예술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미술의 측면에서 본다면 미술은 이미 자본으로 잠식되어있었고 미술활동의 조건은 자본을 미화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자본으로 잠식되어가는 미술이나 정치적으로 미화되는 미술이나 미술에 대해서는 독자적 가치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자본주의는 개인적 자유로운 미술활동을 강제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시대적 철학과 사조를 만들거나, 참여하며 때로는 변화되는 것을 억지로 거부하기도 하며 작품 활동이 가능했으나 공산주의 미술은 그러하지 못했다. 이것은 곧 다양한 표현으로 미술이 다양화지던 시기에서 도태되는 공산주의 미술로써 나타났지만 자유시장으로 변화되는 중국의 경우 오히려 현대 미술의 새로운 장르로 인식될 만큼 독특한 미술로 나타났다.

 

공산주의 에서는 인간의 개조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모든 선전이 가능한 매체는 정치적 방향에 따르는 도구가 되어야 했다. 물질이 인간의 예술활동 역시 규정지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인데 물질적 생산의 발전과 예술적 생산 사이의 불균등한 관계가 있음으로 그 역시 물질로써 예술활동의 규정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마르크스, 정치경제학비판)

 

Gorki어떻게 쓰는 것을 배웠는가에 대하여(1928)에서 전형을 이야기 했다. ‘작가가 20명에서 50, 100명의 점원, 사무원, 노동자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가장 특징적인 계급적 성질, 습관, 취미, 몸집, 신안, 말투, 등을 발췌하여 그것들을 하나의 점원, 사무원, 노동자 속에 통일할 수 있다면 그 수법에 의해 전형을 창조하는 것이고, 이것이 곧 예술이다.’ 이것은 일반성을 중시하는 공산주의 적인 특징이 나오는 것이고 전형성을 강조하여 특수성이 사라지는 것이 예술이라는 것인데 이를 토대로 많은 독자적 시각의 예술가들은 억압적인 상황 속에 작품을 진행해야 했다.

 

마야코브스키의 위대한 시

 

동지 생활이여!

자 빨리 따뜻하게 하자.

5개년 계획에 따라

따뜻하게 하자, 나머지 생애를.

 

러시아의 10월 혁명 이 후 예술에도 혁명이 와야 한다고 주장되었다. 개인적인 심미 기준으로 감상하고 감성에 젖는 것을 거부해야하고 정치가들의 사회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예술행위였던 것이다. 5개년 계획에 따라 미술가들도 사회주의의 승리, 노동자와 농민을 목표로 하는 문화운동에 동참해야 했다.

 

1932년 문학작품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수립된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문학외에도 다양한 장르의 예술에 영향을 끼쳤다. 평가의 항목이므로 많은 논의 과정을 거쳤으나 1934년 제1회 소비에트 작가회의에서 공식용어로 채택되어 지표를 선정하였다. 1.노동자계급 세계관, 2.예술창작의 철학적 바탕으로서의 변증법적 역사적 유물론, 3.노동자계급의 계급적 입장에 따른 예술창작의 정신적·이념적 전제로서의 당파성 등이 가치평가 태도이다. (다음 백과)

 

이러한 주장은 평등한 세상에 대한 갈구로 나타난 주장이었고 이러한 주장을 미화시키기 위한 문학 및 예술작품들은 대중의 우월함과 다수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것에는 훌륭한 미적 충격을 주었지만 인간적인 고민하고 아파하는 감성이 없이 현실에 만족하는 묘사가 주를 이루었다. 사건에 대한 구체적 묘사가 지나치게 강조되어 내면의 모습을 보이기 어렵게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다수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간은 거대한 공산주의 체제하에 있는 공장의 기계와 같은 모습으로 비쳐진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은 정치를 위한 공익적 광고의 모습으로 미술을 표현하게 하여 장식으로 전락되는 미술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인간이 가진 계급에 대한 열등의식이 없도록 평등한 유토피아를 주장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 개인의 감정을 없애고, 국가라는 혹은 동맹이라는 거대한 조직의 부속으로 인간을 만들어 버렸다. 감정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감수성이 예민한 예술가들에게는 평가의 지침과 유일한 표현 방향을 제시했고 이를 통해 대중통제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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