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본 이야기/2창수의 세상 미술 이야기

미술대표와 미대교수 그리고 미술가

2창수맨 2013. 1. 30. 10:16

 

 

미술대표와 미대교수 그리고 미술가

 

 

Artist 2창수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가 되는 미술은 권력, 힘에 의지한 체 표류하곤 하였다. 미술은 개인적 주장만 있기에 그 주장에 대한 신뢰를 누군가 만들어 주어야 올바른 전달이 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것이었다.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가 정당한 미학적 언어로 만들어 지기위해서는 저명한 동조 대리인이 필요하다. 자본주의에서 사람들은 더 잘 살기위해 주위의 동료들에게 속임수를 쓰며 살았으며 그러한 속임수를 수환이라는 것으로 미화시켰다. 미술 역시 일정한 속임수를 쓰는데 그 것이 정당하다고 저명한 인사가 보증을 서는 행위가 필요했다. 그것이 미학이고 평론이었다. 대중의 무지함과 다른 우월을 보여 주기위해 화려한 수식어구와 여러 철학, 문학을 뒤 섞어 놓기에 일반인들은 써져 있는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자 대중의 무지함이 글의 보급화와 정보의 보급화로 무지로만 해석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좀 더 많은 대량의 보증이 있어야 대중이 속았다.

 

보다 나은 대중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결탁이 필요하다. 한 사람의 지지 보다는 많은 사람의 지지가 좋으며 지역에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토착 지지자가 많을수록 좋은 화가가 될 수 있다. 과거 불과 3~40년 이전만 하더라도 스승이 누구냐에 따라 작품의 표현, 재료, 주제 등이 되 물림 되었지만 대학이라는 제도가 생겨나면서 점점 전문화가 되었다. 대학은 말 그대로 최고위의 교육기관으로 과거 전수되던 방식을 보다 체계적이고 다양하게 변화 시켰다. 그리고 지역 미술은 새롭게 만들어진 대학을 중심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생겨난 대학은 일제 강점기에 유학 갔다 온 미술가들을 교수로 임용하여 새로운 미술 유행을 시도하였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제 막 독립한 신생국가가 이해하기에 시대도 정서도 맞지 않는 것이었고 대학 교수들의 주장을 순순히 이해하려 애를 쓸 뿐이었다. 그들을 본받아 일본어나 다른 외국어로 되어있는 외국 미술서적을 통해 미술 학도들은 외국 그림을 접하였고 일부 무지한 작가들은 그것을 그대로 표절하곤 하였다. 전통이란 거의 남아있지 않은 6~70년대 거리낌 없는 베끼기는 사혁의 육법이론(六法理論)중 전이모사(傳移模寫)에도 등장하는 당연한 방식이라 믿었다.

 

과거 화가가 되려면 그냥 그림을 그리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미술대학을 나와야 하거나 공모전을 통해 등단을 하기도 한다. 미술대학을 나와도 공모전을 통해 인정받고 입상을 한 후 작가로 자연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지역에 거주하는 전문미술가들은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지역 미술 대회에 심사위원으로 진출하여 갖가지 이권에 개입 하였다. 작가가 되기 위한 통과의례로 공모전의 초대작가나 지역 미술단체 가입여부가 지역 작가의 기본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연 개인적 미술이 전체적인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지역 몇몇의 미술가들에게 이해를 구해야 했고 그 욕구가 강해질수록 이권은 많아졌다. 미술 단체의 세력과 미술대학 세력으로 나누어져있는 듯 보이는 지역 토착 미술 권력들은 사실 출신 학교별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단체장이라도 선출 할 때에는 출신 학교 선 후배로부터 전화에 시달린다. 매번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는 회원 회비 대납 문제, 회원 동원을 통한 선거 개입 등 지역 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 하고 있는 중심에는 지역 저명한 화가들과 지역 교수들이 등장한다. 수많은 금액을 내고 당선되려는 저의가 무엇이며 그 자리가 어떤 이권과 개입되어 있는지 조사 해볼 필요가 무척이나 있어 보인다.

 

대학은 이미 누구는 어느 교수 밑으로 줄을 서있다는 소리가 공공연한 이야기로 학생들끼리도 하는 이야기 소재이다. 권한이 많은 대학교수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다. 지역 소재 대학은 상당부분 약해져 있지만 경기도 권역만 하더라도 무슨 권력자 마냥 기고만장이다. 모두 그런 것이 아닌, 소수의 사람들이 그러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전혀 읽지 못하는 교수들은 아직도 되도 않는 자랑을 공공연히 하는 사람 구실 못하는 교수도 있다. 결국 그 옆을 지키는 아부꾼들은 교수 차문 열어주며 거친 미술계에서 눈치를 보고 있고 교수는 이제 그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한 후 권리를 이양하려 한다. 눈치가 보이면 다른 학교끼리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달콤한 권리를 계속 영위한다. 아부꾼들은 교수 사회와의 결탁이 자신 작품을 포장 할 수 있는 최고의 포장재임을 잘 안다. 문제는 자신이 철썩 같이 믿는 구석도 학교를 나오면 지성인으로 대우를 안 해주는데 있다. 현재 교수집단은 최고의 지성이라 자부하지만 현실과 거리가 먼 과거 유행사조를 주장하는 한국 최고의 지성집단으로 불리 운다. 그리고 그들의 추종 세력은 아부꾼들이라 불리 우지만 교수들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대다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거나 대다수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더라도 걱정 마시라. 그래도 대중들이 왜 대중인지 생각해 보면 별 걱정 한해도 될 것이다. 오래전 친일을 해오고 잘 사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밝히려 해도 국민 분열시킬까봐 안 밝히는 나라에서는 아무 것도 흠이 될 수 없다. 정치의 입장으로 본다면 오염된 것이 다스리기 편안하다. 그 오염된 일에 잘 협조하는 미술인이 안 되는 것이 정직한 미술가가 되는 길이다. 주위에 일 같지도 않는 그림 그리는 화가가 있다면 그들에게 쌀 한 움큼씩 주어라. 미술이 오염되고 세상일이 남의 일처럼 흘러가도 미술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쌀 한줌 얻으며 자리 지키는 미술가가 있기 때문에 유지되는 것이다. 기득을 부리던 미술인의 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