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본 이야기/2창수의 세상 미술 이야기

같은 공간을 유목하는 김준권 목판화가

2창수맨 2012. 10. 11. 01:16

 

 

같은 공간을 유목하는 김준권 목판화가

   

 

 

 

글, 사진 Artist 2창수

 

 

조용한 토요일

세찬 비바람을 동반한 태풍 영향을 연속으로 맞이한 후라서 더욱 조용하게 느껴지는 나른한 가을 햇살이었다. 시골로 향하는 도로 곳곳이 차들로 붐빈다. 오랜 유교적 사고가 깊게 자리한 우리정서에는 추석이 인접한 이번 주말이 묘역 정리의 적기인가 보다. 작은 산을 닮은 봉분들이 산 중턱에 옹긋 봉긋 잘 정리 되어있다.

 

자연을 닮는 다는 것은 사람들의 오랜 염원이기도 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조화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仁者라 칭하며 존경한 것도 그런 연유가 아닐 듯싶다. 산세가 험하고 물이 거칠게 흐르는 곳은 농토가 좁고 생활이 팍팍하다. 주식이 쌀을 섭취하는 한국의 오랜 삶의 방식은 벼농사를 짓지 못하면 삶이 더 고달프다는 인식을 갖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진 사람은 대대로 안정적 삶을 누리며 밖으로 어진 것을 실천한 사람을 칭하는 말이니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이 당연한듯하다.

 

산이 많은 충북의 당연한 골짜기려니 하고 찾아간 목판문화 연구소는 백곡 저수지를 돌고 돌아 만나는 따스한 볕이 잘 드는 산자락 아래에 있었다. 여느 시골과 달리 별장과 같은 좋은 집들이 줄서있는 길가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목판문화연구소는 가장 끄트머리에 있었다. 낮으막한 산자락도 좋았지만 넓게 평지를 달려온 것도 좋았다.

 

목판화라는 것은 낯설다. 초등학교 시절 한두 번 해 본적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칼끝의 날카로움과 나무의 결과의 경쟁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아 마치 톱날처럼 거칠게 되기 일쑤였다. 고운 나무로 된 판도 결에 따라 자연을 안고 풀어 내야하는데 김준권 작가는 우리가 흔히 보는 합판으로도 치밀한 작업을 해왔다. 거친 본드와 수직 결로 붙여져 강한 탄성을 유지하려 만든 합판의 새김은 더 고달픈 생각과 자연, 공장의 냄새까지도 수반 되었을 텐데 참 자연스럽게도 다시 자연이 새겨져있었다. 나무 판에 새겨진 칼의 방향과 다르게 말라 붙어있는 잉크, 먹들이 나의 손끝과 교감을 형성 할 때 새김과 찍어냄은 서로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지 않은데 같은 것 오랜 기간 자연을 모방한 수많은 예술가들의 그것처럼 판화는 생각을 반대로 해서 만들어 찍어 내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목판화가는 별로 없다. 작가의 말대로 목판화 역사는 근대에 와서 빠르게 사라져간 예술 분야다. 조선시대에 판화의 대부분은 먹으로 찍는 판화였다.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행실을 알려 주기위해 조선시대 세종 13년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기반으로 한 삼강행실도를 간행하여 대중화를 하였다. 대중에게 많이 전파를 위해 당시 흔한 목판화 기술을 이용하였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 외국식 잉크 인쇄기술의 유입과 대중적 확대를 우려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제 강점기에 거의 사라져 버렸다 한다. 판화의 개념으로 봐야 하는지 인쇄의 개념으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판화는 복제성에 대한 특징으로 순수 미술 영역에서 조차 소외되었다.

 

일제가 우려하던 판화의 대중적 미술 특징은 나중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소규모 공방에서 대규모 인쇄가 가능한 창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장점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 붐을 타고 학생운동과 함께 절정을 맞이했다. 그것은 인쇄소를 통해 복제물을 만들 수 없는 환경이 한목을 하였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을 작품을 통해 알린다. 그러나 이렇게 사용되어지는 미술은 과연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는지 궁금했다. 시대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표현하는 것은 미술을 접근하는 기본 방식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과거 학생 운동가들 작품은 사상을 통한 시대 참여 미술이라 한다면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시대 참여는 돈을 추구하는 유행 사조 참여 미술들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자기시대는 자기가 알아서 해야 한다는 답변을 해주었다. 그리고 바뀐 시대에 변하지 않고 추구하는 것을 자랑하는 작가는 아주 훌륭하거나 바보라는 말로 시대를 작가들이 어떻게 느끼고 바라보며 참여해야 하는지를 이야기 해주었다.

 

 

 

20년이 넘는 시간을 진천 백곡 저수지에서 작품을 임하는 작가는 자연에 묻어서 자연을 세기고 찍어낸다. 80년대 후반부터 유지해온 민화적 감성, 민중적 이념 판화를 이제는 찾기 어렵지만 9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시한 시골의 모습은 그가 92년 진천에 정착하면서 보여준 삶의 모습이다. 억눌렸던 시대 표현을 몸으로 표현하였다면 오늘날 다색 목판으로 찍어진 산뜻한 작품들에서는 몸으로 비비는 한국적, 역사적, 시대적 모습을 찾기는 어렵다. 자연에 대한 관조적 성찰의 모습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이러한 아쉬움을 앞으로 어떻게 더 진화시켜 나아갈지, 또 많이 남지 않은 우리 목판화 기술을 어떻게 제시해줄지 기대하며 바라 봐야 하겠다. 그의 말대로 작가는 계속 변화하는 모체이기 때문이다. 넓은 작업실에서 계절에 따라 이리저리 유랑하며 작업하는 작가의 모습을 통해 시간의 변화를 몸으로 실천하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계절에 들러 봐야겠다. 쌀쌀해지는 가을, 이젠 어느 구석에서 자연을 묻히고 있는지 바라보는 뒷산 노루의 숨결 뒤 숨어서